It ain`t over it`s over

그룹명5/가요향기

천경자 그림과 김윤아 야상곡 속에서

Richchi 2012. 3. 18. 02:04

 

 

 

 < 천경자作 1995년 - 황혼의통곡 >

< 천경자作 1993년 - 볼티모어에서 온 여인1 >

< 천경자作 1974년 - 4월 > : 1974년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그린 그림 속 갈색 피부 여인의 머리칼에는 연보랏

빛 등꽃들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사월의 신비로움과 화사함이 꽃잎 끝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네요. 강렬한 호랑 나비

의 무늬보다 여인의 연보랏빛 입술에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은 왜일까요.

 



 

바람이 부는 것은 더운 내 맘 삭여주려
계절이 다 가도록 나는 애만 태우네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애달피 지는 저 꽃잎처럼
속절없는 늦봄의 밤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구름이 애써 전하는 말
그 사람은 널 잊었다
살아서 맺은 사람의 연
실낱 같아 부질없다
꽃 지네 꽃이 지네, 부는 바람에 꽃 지네
이제 님 오시려나, 나는 그저 애만 태우네

바람이 부는 것은 더운 내 맘 삭여주려
계절이 다 가도록 나는 애만 태우네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김윤아의 '야상곡(夜想曲)'에는 천경자의 냄새가 있다. 화려한 꽃들과 꽃무늬들, 원시적 감수성과 은밀한 성적욕구들,

 견딜 수 없는 권태와 몸을 뒤트는 음란, 과도한 장식성으로 억압한 자기 엄격주의 사이로 어쩔 수 없이 풍겨나오는 비  

 릿한 고독의 냄새.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는 외부에서 올 수 없다. 내부로 들어오는 문고리를 그녀 스스

로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끝없이 기다리며, 애를 태운다. 바싹 마른 입술과 쾡한 눈, 똬리를 튼 뱀과

물처럼 앉은 고양이. 사랑이란, 김윤아에게, 혹은 천경자에게, 하나의 화려하고 쓸모없는 패물같은 것이다.

김윤아의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작년 봄이 되살아났다.   잃어버린 시간같이 몽롱했던 계절이, 아픈 올올을 다시

흔들어내며 피어오른다. 내 전화기 속에서 그녀는 저것보다 더 흐물흐물한 목소리로 봄 내내 애만 태웠는데, 끝내 그녀에게도, 또는 내게도, 기다리던 기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돋아난 봄과 함께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시간은 다시 위험해지고 아슬아슬해진다.

공주들은 늘 기다렸지만, 많은 왕자들은 제때에 오지 않았다. 대신 꽃들만 먼저 보냈다. 살랑이는 바람들만 잔뜩 보냈다. 살랑거리는 커튼 사이로, 알 수 없는 설렘만 서둘러 보냈다. 김윤아의 노래에는 진한 화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를 감추지 않고, 화장의 빛깔 위로 마음이 묻어나온다. 그녀가 울 때 뺨에 함께 뭉쳐흐르는 화장끼가, 과적된 슬픔같다. 김윤아의 노래가 끝날 무렵이면, 당신은 보게 될 것이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산 중에서 혼자 피었다 낙화하고 이윽고 시들어간 꽃의 잔해를. 미치도록 아름다웠던 한때를 증거하려는 듯 더욱 추한 빛으로 일그러진 시간을 만날지 모른다. 

그러니 사랑이여. 너무 좋은 사랑이 되려 재고 기다리지 말아라. 그저 한때, 자연이 선물한 저 아름다움의 번성에 기대어, 긴급히 사랑하라. 한숨 없이 사랑이 자랄 수 없지만, 한숨 만으로 사랑이 피어날 수는 없다. 알맞은 때를 가려, 스스로 봄이 되는 게 사랑이다. 봄날은 위험하지만 봄날이 가고나면 봄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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