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 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뒤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안개속에 숨다, 류시화
'그룹명3 > 예쁜사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장난 시계바늘 - 허석주 (0) | 2014.02.20 |
---|---|
이별한 자가 아는 진실 - 신현림 (0) | 2014.02.05 |
중년의 당신, 어디쯤 서 있는가 - 이채 (0) | 2014.01.06 |
안도현 -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 (0) | 2013.12.17 |
윤보영 시인의 사랑에 관한 글 (0) | 2013.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