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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5/클래식향기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Schumann, Concerto for Piano in A minor, Op.54)

Richchi 2015. 11. 14. 20:27

 

Schumann, Concerto for Piano in A minor, Op.54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Robert Schumann

1810-1856

Maria João Pires, piano

John Eliot Gardiner,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Barbican Centre, London

2014.01.21

 

Maria João Pires - Schumann, Concerto for Piano in A minor, Op.54

 

이 곡은 클라라에 대한 슈만의 열렬한 사랑 고백이다. 1악장 첫 투티에 이어서 오보에가 노래하는 ‘클라라의 모토’는 가장 달콤한 속삭임이다. 이 주제는 곡 전체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슈만의 정신세계를 대표하는 두 축, 행동하는 인간 ‘플로레스탄’과 꿈꾸는 인간 ‘오이제비우스’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클라라의 모토’를 발전시킨다. 당대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 클라라 비크의 실력에 걸맞게 뛰어난 테크닉을 요구하지만, 낭만적인 시심과 즉흥적인 감상으로 가득한 매력적인 곡이다.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한 1840년부터 작곡 영역을 확대한다. 피아노 독주곡과 가곡만 써 온 슈만은 그해부터 두 개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관현악곡과 합창곡까지 손을 넓힌다. 클라라는 “그의 상상력을 피아노에만 가둬 둘 수 없다”고 말했고, 슈만은 이에 화답하여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환상곡(Konzert-Fantasie) A단조를 작곡했다. 이 곡이 아주 맘에 들었던 클라라는 아예 제대로 된 협주곡으로 개작해 달라고 요구했고, 슈만은 4년 뒤인 1845년 간주곡과 피날레를 덧붙여 오늘의 형태로 완성했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는 아주 난산이었다. 1829년에 F단조 협주곡, 1831년에 F장조 협주곡, 1833년에 D단조 협주곡을 스케치한 적이 있지만 매번 첫 부분만 쓰다가 중단했다. 1839년 슈만은 고백했다. “훌륭한 독주자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어떤 협주곡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거라면 쓸 수 있지만….” 이토록 소심했던 슈만이 결혼한 뒤 비로소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의 격려 덕분이었을까?

낭만시대의 작곡가이자 평론가로 활약했던 로베르트 슈만은 법학 공부를 중단하고 뒤늦게 전문 피아니스트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20살 전후이던 1829년부터 1831년까지 프리드리히 비크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큰딸 클라라 비크(1819-1896)는 ‘피아노의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클라라는 13살 때 이미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작곡하는 등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슈만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도와서 완성한 이 협주곡을 그녀는 16살 때 스스로 초연했다. 슈만은 불행히도 손을 다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클라라는 슈만의 음악을 대신 연주해서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슈만은 클라라에게 “너는 나의 오른손”이라고 말했다. ◀슈만 부부

두 사람 사이는 자연스레 사랑으로 발전했다.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반대에 맞서 두 사람은 법정투쟁까지 벌여야 했다. 간신히 결혼에 성공하기 전해인 1839년 슈만은 썼다. “우리는 우리 두 사람의 이름으로 많은 작품들을 출판할 것입니다. 후손들은 한마음 한뜻이 된 우리의 작품 중 어느 게 내 것이고 어느 게 당신 것인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두 사람은 함께 작곡을 했고, 함께 일기를 쓸 정도로 모든 것을 나눈 행복한 부부였다. 결혼 1년, 만삭의 21살 클라라는 남편이 작곡한 환상곡을 1841년 8월 13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했다. 이 곡이 낭만시대 최고 수준의 시적 감수성을 가진 곡이라는 걸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은 클라라였다. 1845년 협주곡으로 완성된 이 곡을 클라라는 그해 12월 드레스덴에서 초연했고, 이듬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신년 음악회를 필두로 유럽 전역에서 환호를 받으며 50여 차례나 연주했다.

결혼 생활이 10년을 넘길 무렵, 슈만은 우울증에 시달린 끝에 라인 강에 투신하는 등 불행한 말년을 향해 달려갔다. 클라라는 아이들이 8명으로 늘어나는 동안 점점 작곡과 멀어져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별로 곡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작곡이 자기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말했다. “창조의 기쁨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오직 작곡을 통해서만 자신을 잊을 수 있습니다.” 슈만도 이 점을 잘 이해했고 미안하게 생각했다. “클라라는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상상 속에서만 사는 남편 곁에 있는 생활은 작곡과 양립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클라라는 규칙적으로 작곡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떠오른 심오한 아이디어들이 기록되지 않고 사라졌음을 생각하면 착잡할 뿐이다.”

클라라는 남편이 죽은 뒤 40년을 더 살며 이 A단조 협주곡을 계속 연주했다. 1856년 슈만이 세상을 떠난 뒤 런던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 때 별로 좋은 평을 받지 못하자 클라라는 크게 낙담했다. 그녀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에게 3악장 피날레를 개작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요아힘은 지혜롭게도 이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이 곡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슈만이므로 자신이 손을 댈 수 없다는 것. 클라라는 결국 남편의 손길이 오롯이 남아 있는 원곡대로 이 협주곡을 평생 연주했다.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기억되는 클라라 슈만, 그녀에게 이 곡은 슈만의 뜨거운 사랑과 아픈 추억, 그 자체였을까?

1악장 알레그로 아페투오소(빠르게, 부드러운, 따뜻한, 사랑스런 마음으로). 원래 독립된 환상곡이었다. ‘클라라의 모토’가 전곡을 지배한다. 전통적인 협주곡 양식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전개된다.

2악장 인터메조(간주곡), F장조, 3부 형식. 슈만의 가장 내밀한 부드러운 마음을 들려주는 부분이다. 어린이처럼 단순하고 자연스럽다. 중간 부분, 피아노 독주의 반주로 첼로가 노래하는 대목이 특히 아름답다. 첫 주제를 상기시키는 모티브 나온 뒤 휴식 없이 피날레로 넘어간다.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빠르고 생기 있게). 햇빛 찬란한, 생기 넘치는 피날레다. 첫 주제는 1악장 첫 주제를 변형한 것이다. 2주제는 싱커페이션으로, 3/4박자에서 3/2박자로 넘어가는 복수 리듬을 들려준다.

Khatia Buniatishvili - Schumann, Concerto for Piano in A minor, Op.54

Khatia Buniatishvili, piano

Paavo Järvi, conductor

hr-Sinfonieorchester

Rheingau Musik Festival 2012 ∙

Kurhaus, Wiesbaden

201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