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 피아노협주곡 1번
Concerto No.1 in G minor, Op.25
Felix Mendelssohn 1809∼1847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정식 이름은 야콥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이다. 19세기 고전주의의 마지막과 낭만주의의 시작을 잇는 가교로 평가받는 그는 탄생 200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작곡가다.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하여 제목으로도 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교향곡 4번 ‘이탈리아’], 몰아치는 폭풍을 수채화톤으로 담아낸 [핑갈의 동굴] 서곡과 천재성으로 가득 차 있는 [한 여름밤의 꿈] 서곡과 ‘결혼 행진곡’, 따스한 온기가 충만해 있는 가곡 [노래의 날개 위에] 등 멘델스존이 남긴 아름다운 멜로디는 앞으로도 우리의 귓가를 맴돌며 영원한 생명력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유명한 멜로디와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내용, 풍부한 상상력과 재기넘치는 유머로 두 세기 동안 음악 대중들을 매료시켜 왔던 멘델스존의 음악은 그 위상이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고, 10대에 이미 거장으로 숭배 받았으며, 요절한 이후에는 전설로 평가받았던 작곡가였던 만큼 모차르트에 비견할 수 있을만한 유일무이한 신동이었다.
천재적인 관현악법, 세련된 낭만주의 신사
사춘기 무렵에 이미 천사로부터 엿들은 선율을 옮겨놓은 듯한 음악을 작곡했던 멘델스존은 20세기 초반 명지휘자들과 명작곡가들로부터 거의 신적인 존재로 대접받았다. 지휘자 펠릭스 바인가르트너가 저서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에서 멘델스존에게 보낸 찬사를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외에도 승마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 언어, 역사, 수학, 천문학, 건축,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일한 천재성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멘델스존의 핵심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해로 흐르는 강도 근원지가 있듯이, 그의 넘쳐나는 천재성에도 분명 출발점이 존재한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바흐를 재발견한 지휘자 역할도 분명 무시할 수 없겠지만, 피아니스트이자 피아노 음악 작곡가로서의 멘델스존은 가치는 지금까지도 덜 조명받고 있다. 물론 누이인 파니 멘델스존이 펠릭스보다 피아니스트로서 좀 더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말이다.
<멘델스존 당시의 게반트하우스>
그의 최초의 음악적 스승은 풍부한 음악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어머니였다. 이후 7살 때부터 파리로 옮겨오면서 베토벤이 선호했던 피아니스트 마리 비고(Marie Bigot)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이후 베를린으로 돌아온 뒤 각 분야의 탁월한 스승들로부터 작곡, 화성, 바이올린, 그리스어, 피아노를 배워나갔다. 1818년 10월 28일 9살의 멘델스존은 피아니스트로서 최초 공개 연주회를 가졌고 1819년에는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이후 1821년 작곡가 칼 마리아 폰 베버와의 만남과 바이마르에서 괴테와의 만남을 가진 멘델스존은 일종의 내적 성숙을 경험할 수 있었고, 자신의 집에서 열었던 일요 음악회에서 보다 풍부한 감수성과 정교해진 테크닉으로 교향곡과 모테트, 피아노 작품, 가곡 등을 작곡, 연주, 지휘하며 독일 내의 모든 예술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멘델스존은 이 무렵부터 자신의 악기였던 피아노를 위해 많은 수의 협주곡을 작곡했지만, 이러한 사실조차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토벤의 것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자주 연주되고 널리 사랑받은 작품으로 자리잡았지만, 유독 그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멘델스존의 신격화가 극도에 달했던 20세기 초반에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이는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탁월한 기법과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들 협주곡에 멘델스존의 음악정신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 레퍼토리는 물론 레코딩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Mendelssohns,Piano Concerto No. 1 in G minor (op. 25) , Yuja Wang, Kurt Masur (Full) Kurt Masur (direction) Yuja Wang (piano) Verbier Festival Orchestra 낭만주의 피아노 협주곡의 원형 앞서 언급한 바대로 멘델스존이 이끌어나갔던 일요일 음악회를 위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이 최소 두 개 이상 더 작곡되었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정식 출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만큼 그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여기에 1838년에 작곡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레나데]와 [알레그로 지오코소 b단조 Op43], [피아노, 바이올린, 현악을 위한 협주곡 d단조]까지 넓은 의미의 피아노 협주곡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 작품수는 기존에 알려진 것에서 2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이 정도면 멘델스존이 피아노 협주곡에 쏟아부은 노력, 아니 피아노 협주곡이 그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장르였는지 수치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그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낮은 평가를 받으며, 그 적합한 권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도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낭만주의 피아노 협주곡의 원형을 창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슈만이나 리스트의 협주곡이 보다 낭만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엄밀한 관점에서 이들은 협주곡, 즉 Concerto라는 고전형식에 가깝다기보다는 랩소디 Rhapsody 혹은 콘체르트슈툭 Konzertstuck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연상시키곤 한다. 이에 비하면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고전적 협주곡 양식을 바탕으로 낭만파 특유의 서정, 이 시대에 만개하게 된 피아노 비르투오시티를 완벽하게 결합했으며, 베버에 의해 제창된 낭만파 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피아노 협주곡 양식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정신은 후일 프랑스의 카미유 생상스에 의해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한편 멘델스존의 피아노 솔로 작품들 또한 [무언가], [론도 카프리치오소], [엄격 변주곡] 외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작품 목록 가운데 교회음악만큼이나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 작품들의 음악적 위상은 대단히 높다. 그의 [세 개의 전주곡]과 [세 개의 연습곡 Op.104]나 여러 변주곡들, 전주곡과 푸가와 같은 바로크 양식에 의한 작품들, [무언가]에 필적하는 새로운 형식인 [어린이를 위한 소품 Kinderstucke]이나 [음악노트 Albumblatt] 등은 대단히 혁신적인 동시에 지극히 낭만적인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피아노 작품이 아직까지도 교육적 측면만이 강조되고 있는 현상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 장르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천재의, 천재에 의한, 천재를 위한 20대의 멘델스존이 작곡한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형식적 완성도는 이미 완벽하기에 분명 발전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여기서 유추해본다면, 그의 피아노 협주곡이 이토록 존재감이 없었던 것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낯설은 완벽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멘델스존의 수채화 루체른 풍경.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그림과 같은 따스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2번 협주곡]은 [1번 협주곡]이 발표된 지 6년 후에 완성되었다. 결혼한 직후인 만큼 한층 성숙한 책임감이나 정신력을 반영하는 듯 시종 어둡고 사색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을 작곡하게 된 것은 영국의 버밍험 음악제에 초청되어 오라토리오 [성 바울]을 지휘할 때였다. 제의를 받은 멘델스존은 즉시 작곡에 착수하여 빠른 속도로 전곡을 마무리했고, 1937년 9월 21일 영국 버밍험 음악제의 일환으로 초연까지 이루어졌다. 이 때도 멘델스존이 직접 연주, 지휘하여 초연에 임했다. 한층 유기적으로 통합을 이룬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1번 협주곡]과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주제가 다시 반복된다거나 끊없는 비르투오시티가 넘실거리는 것과 같은 사라지고, 오히려 악장의 독립성과 관현악 파트의 역할이 강조되며 2악장에 아다지오 템포의 론도 형식을 도입하는 등 한층 신선한 특색을 보이고 있다.
Mendelssohn piano concerto opus 25
멘델스존은 출판된 버전으로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다. 1830년부터 31년 사이 작곡한 [1번 협주곡 g단조 Op.25]와 1837년에 작곡한 [2번 협주곡 d단조 Op.40]이 그것이다. 멘델스존의 짧은 생애 가운데 중기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 외에도 피아노 협주곡이 더 존재한다. 10대 무렵인 1823년과 24년, 누이인 파니와 함께 연주하고자 작곡한 [2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E장조]와 [Ab장조] 두 곡을 작곡했고, 1822년에 [피아노와 현악을 위한 협주곡 a단조]가 뒤늦게 악보가 발견되었다. 이들 작품은 마이너 레이블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레코딩되어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는데, 다들 화려한 로코코풍의, 어딘지 모차르트 초기 피아노 작품을 연상시키는 듯한 느낌을 준다.
[1번 협주곡]과 [2번 협주곡]은 서로 상이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1번은 봄날의 곰처럼 포근하면서도 유쾌한 작품이라면, 2번은 다소 어둡고 사색적이며 내면으로 침잠하는 듯한 작품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와 같이 음악적으로 성숙한 걸작을 생산한 1844년 이후, 즉 생의 마지막 시기에 피아노 협주곡을 다시 한 번 썼다면 과연 얼마나 훌륭한 걸작이 탄생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1번 협주곡]은 멘델스존의 여러 협주곡 가운데 가장 먼저 출판된 작품으로 화려한 기교와 낭만적 열기를 충분히 갖춘 전형적인 낭만주의 협주곡이다. 1830년 이탈리아를 여행할 당시 이 작품을 쓰고자 마음먹었는데, 당시 [교향곡 ‘종교개혁’]을 발표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즉시 작곡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해를 넘겨 1831년 10월에야 전곡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초연은 그해 10월 17일 멘델스존 연주와 지휘로 뮌헨에서 이루어졌다. 이 곡은 당시 젊은 여류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높이고 있던 델피네 톤 샤우로트에게 헌정되었는데, 그녀에 대한 로맨틱한 여운만이 숨어 있을 뿐 명확한 사랑의 증거는 확인할 수 없다.
모차르트의 [E플랫 장조 협주곡 K271]이나 [베토벤의 4, 5번 협주곡]처럼 피아노가 가장 먼저 노래를 부르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2중 제시(double exposition)를 따르지 않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동일하게 주제를 연주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그리고 3악장이 연속해서 연주되며 1악장 주제가 3악장에서 다시 제시된다는 것, 카덴짜 부분을 과감히 생략했다는 것 등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